우화(寓話)의 강
마종기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
두 사람 사이에 물길이 튼다.
한 쪽이 슬퍼지면 친구도 가슴이 메이고
기뻐서 출렁이면 그 물살은 밝게 빛나서
친구의 웃음소리가 강물의 끝에서도 들린다.
처음 열린 물길은 짧고 어색해서
서로 물을 보내고 자주 섞여야겠지만
한세상 유장한 정성의 물길이 흔할 수야 없겠지
넘치지도 마르지도 않는 수려한 강물이 흔할 수야 없겠지
긴 말 전하지 않아도 미리 물살로 알아듣고
몇 해쯤 만나지 못해도 밤잠이 어렵지 않는 강
아무려면 큰 강이 아무 의미도 없이 흐르고 있으랴
세상에서 사람을 만나 오래 좋아하는 것이
죽고 사는 일처럼 쉽고 가벼울 수 있으랴
큰 강의 시작과 끝은 어차피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물길을 항상 맑게 고집하는 사람과 친하고 싶다.
내 혼이 잠잘 때 그대가 나를 지켜보아 주고
그대를 생각할 때면 언제나 싱싱한 강물이 보이는
시원하고 고운 사람을 친하고 싶다.
우화의 강은 저의 애송시 중의 하나인데, 이번에 포스팅하면서 마종기 시인에 대해 좀 더 깊이 알게 되었어요. 문학가였던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재능도 있지만, 삶을 올곧게 살아오면서 좋은 시를 많이 쓴 대단한 분이군요. 산문집 《우리 얼마나 함께》도 읽어 보고 싶어요.
우화의 강은 인간관계 중 우정을 자연의 이미지 '강'에 비유해서 섬세하게 표현한 시인데요. 시인은 이 시를 통해 인간관계의 소중함과 그 의미를 깊이 있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시의 첫 구절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 / 두 사람 사이에 서로 물길이 튼다"는 서로 마음이 열리고 교감이 시작되는 순간, 두 사람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물길'이 형성된다는 말입니다. 이 물길은 서로에게 마음이 연결되는 정신적인 공간을 의미하는데, 관계의 소중함을 깊이 생각하게 하는 아름다운 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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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종기: 시인, 소설가, 의사, 교수. 최초의 동화작가 마해송과 현대무용가 박외선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연세대 의과대학 재학 중 시인 박두진의 추천을 받아 1959-1960년 「현대문학」에 3회 추천 완료하며, 시 '해부학교실'로 등단했다. 이어 첫 시집 <조용한 개선> 출간하며, 연세문학상 수상했다. 1964년에 서울대 의대 대학원에 입학, 1965년 한일협정 반대 입장을 표명하여, 군사 정권의 심한 고문을 받고 수감생활을 했다. 고문의 후유증을 겪었던 그는 힘들었던 고초에 대한 시를 쓰고, 미국으로 건너가 오하이오 주립대학교에서 의과대학 교수(소아 방사선과 의사)를 지내며 시를 발표한다. 그의 시 세계는 귀소본능과 그리움을 주축으로, 음악과 미술, 무용 등을 모티브로 창작을 이어나갔다. 은퇴후 10년간 여러 매체에 기고했던 글들과 새롭게 적은 몇 편의 글을 엮어 산문집 《우리 얼마나 함께》를 펴냈다.
○ 1965년 시집 《두 번째 겨울 》 출간.
○ 1976년 시집 《 변경의 꽃 》 을 출간, 한국문학작가상을 수상.
○ 2002년 의사와 교수직에서 은퇴후 《 새들의 꿈에는 나무 냄새가 난다 》 출간, 동서문학상 수상,
○ 2003년 첫 산문집 《 별, 아직 끝나지 않은 기쁨 》 출간.
○ 2004년 마종기 시선집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희망이 아니므로 》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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