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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노트

[북 리뷰] 《나는 나무에게서 인생을 배웠다》, 우종영

by 마중물 톡톡 2024. 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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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나무의 생존 전략에서 배우는 단단한 삶의 태도
▶나무병원 설립, 30년째 나무를 돌보는 나무의사
▶나무의사에게서 배우는 인생의 지혜
▶나무의 방향타는 우듬지,  인생의 방향타는 무엇일까?

 

나무의 생존 전략에서 배우는 단단한 삶의 태도 

나이가 들수록 나무가 점점 더 좋아진다. 사진 찍는 취미를 가지면서 꽃과 나무, 구름을 자주 카메라에 담으며 나무와 좀 더 친밀해졌다. 전에는 무심코 지나치느라 존재 자체도 몰랐던 나무도 눈길을 주면서 나무이름도 하나둘 새롭게 익히고 있다. 피곤할 때 창 밖으로 보이는 매봉산 숲을 마주하면서 눈을 쉴 수 있어서 가까운 곳에 숲이 있다는 사실이 늘 감사하다.

 

그동안 독서모임에서 함께 읽었던 250여 권의 책들 중에 다시 한번 읽고 싶은 도서목록에 오른 책들이 나무와 숲에 관한 책 세 권이다.  같은 저자의 또 다른 책 『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2001년 7월)를 비롯해 『궁궐의 우리 나무』(2002년 7월) , 『숲에게 길을 묻다』(2013년 9월)이다. 녹음이 짙어가는 6월에  함께 읽고 싶은 책을 추천하기 위해  '나무'를 주제로 한 책을 찾던 중 『나무에게서 인생을 배웠다』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나무병원 설립, 30년째 나무를 돌보는 나무의사

저자는 <푸른 공간>이란 나무 병원을 설립해 30년째 아픈 나무를 돌보는 우종영 나무의사다. 열악한 환경에서 힘겹게 하루하루를 버티는 도심의 아픈 나무부터 몇 백 년을 인간과 함께했지만, 병충해와 자연재해로 상태가 나빠진 천연기념물 고목까지 그가 살려낸 나무만 해도 수천 그루다. 나무를 살리는 일은 위태롭던 그의 삶을 붙들어 준 나무에 대한 보은이자 과거의 자신이 그랬듯이 시련 앞에 고통받는 생명을 보살피는 일이라고 한다.

 

이 책은 나무의 특성과 인생을 연결해 쓴 글이 마음 깊숙이 스며드는 매력이 있다. 무엇보다 나무를 향한 저자의 열정과 위기 상황을 돌파하는 결단력, 한결같은 직업정신, 사명으로 아픈 나무를 돌보는 정성이 감동적이다. 공감하거나 마음에 새겨두고 싶은 글이 많아 밑줄 친 부분을 옮겨 보니 무려 A4 12장이나 되었다.

 

그중에 마음에 깊이 울림을 준 내용이 있다. 그중 하나는 서울시에서 조경상까지 받은 소나무들이 누렇게 죽어가는 것을 살려 보려고 모 기업에서 <푸른 공간>에 위탁한 서울과 경기지역 나무들을 모두 관리하면서 겪은 사연이다. 한 업체에 일을 몰아준 것에 의문을 품고 감사를 나온 담당자와 사흘간 새벽 4시에 만나 나무를 돌보러 나서서 어두운 밤에 귀가하기까지 동행하는가 하면, 나무를 살리는 일이라면 시키지 않은 일까지 자처하는 모습에서 나무사랑의 진정성이 배어 나온다. 그뿐 아니라 그를 평소에 눈여겨본 각 건물의 경비원, 환경미화원에 이르기까지 주변 사람들을 탐문한 결과 그들에게서 나온 이야기가 한결같았다고 한다. 이를 통해 여러 가지 의구심을 가뿐히 털어냈다.

 

 

 나무의사에게서 배우는 인생의 지혜

다음 글은 나무를 지극 정성으로 돌보는 마음만이라도 누구에게든 뒤지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하는 그가 어떤 태도로 나무를 돌보는지 볼 수 있는 단면이다.기회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선물이 아니라 최선을 다하는 날들이 차곡차곡 쌓였기 때문에 찾아든 결과물이다. 누군가는 그랬다. 좋은 일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찾아오고, 더 좋은 일들은 인내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찾아오지만, 최고의 일은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찾아온다고. 그것이 바로 지금도 내가 아픈 나무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 그리고 내게 주어진 오늘 하루에 최선을 다하는 이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미련스러울 정도의 굳은 믿음으로 끝까지 노력하는 것뿐임을 아는 것이다”(p.199-200).

 

또 하나는 50대 중반에 다리 수술을 받고 6개월간 집에 머물다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평범한 사실을 깨닫고, 목발을 짚고 지리산 종주하기로 결심하고 실행에 옮기는 모습이다. 보통 사람의 걸음으로 3-4시간 걸리는 거리를 새벽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걸어서 도착한 것이다. 목발을 짚고서도 산에 오를 수 있다는 걸 확인한 그는 이튿날부터 과감하게 야간 산행까지 감행했다. 남보다 두 배의 시간이 걸려 일주일간 지리산 종주를 해낸 그의 결단성과 강인함이 놀라웠다. 이러한 모습은, 불가능해 보이는 것은 시작을 해보기도 전에 지레 포기하는 내게 도전을 주었다.

 

제대로 자리 잡으면 보통 몇백 년을 사는 나무들. 평생 한 자리에서 살아야 하는 기막힌 숙명을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나무들은 얼마나 많은 사연을 품고 살아왔을까.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내용과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내용이 몇 가지 있다.

그중에 하나가 아까시나무에 대한 편견이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사람들이 소나무를 비롯한 한국의 토종 나무를 없애려고 아까시나무를 일부러 심었다는 낭설이 있지만, 아까시나무는 일본인이 의도적으로 심은 나무가 아닐뿐더러 토종 나무들을 죽게 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동안 부모님 산소에 벌초하러 갈 때마다 자생하며 널리 퍼지는 아까시나무 싹을 뽑으며 괜히 오해했다. “아까시나무야, 미안해!”

 

한여름에 피는 형형색색의 꽃들은 가지가 성장을 멈췄다는 증거라는데, 최선을 다해 성장한 후 더 욕심을 내지 않고 스스로 멈춰야 할 때를 아는 나무들에게서 삶의 지혜를 배운다.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나무들이 있다. 붉나무, 먼나무, 황칠나무, 튤립나무, 보리밥나무, 미선나무 등이다. 나무마다 깃든 사연들을 알고 나니 모든 나무가 더 소중하게 다가온다.

아까시나무와 주목나무 그리고 서울숲 전경.

 

나무의 방향타는 우듬지,  인생의 방향타는 무엇일까?

이 책에 등장하는 여러 나무 중에 특히 주목나무를 좋아한다. 일명 크리스마스 나무라고 불리는 주목나무는 겨울이 되면 종처럼 생긴 빨간 열매를 맺는다.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이라는 주목나무는 세월이 흐를수록 속을 비워 몸 안의 빈 공간을 넓혀간다. … 수백 년을 지탱해 온 뿌리의 힘으로 굳건히 버티면서 나무는 상처가 남긴 빈 공간에 작은 들짐승과 곤충들을 품는다”(p.88). 주목나무의 한결같음과 나이가 들어갈수록 세월이 만들어 낸 빈 공간에 작고 여린 생명들을 품어내는 주목나무의 너른 품을 닮고 싶다. 비움으로써 더 좋은 것을 채울 수 있는 법을 말이다.

 

한편 “우듬지란 나무의 맨 꼭대기에 위치한 줄기를 말하는데, 전나무나 메타쉐쿼이아 같은 침엽수들이 원추형으로 길고 곧게 자랄 수 있는 것은 줄기 꼭대기의 우듬지가 아래 가지들을 강한 힘으로 통솔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시련과 고통이 올 때 삶을 이끌어 줄 방향타, 삶의 구심점이 되는 나의 우듬지는 무엇일까 생각해 보니 ‘인생사명선언문’이다. 인생사명선언문은 지금까지 내 삶의 지침이자 방향타, 버팀목이 되었다.

 

나무의 생존 전략에서 인생 제2막을 살아가는 지혜를 배우는 그에게서 나이 들어가면서 새로운 변화에 잘 적응하기 위해 단단한 삶의 태도를 배운다. “주어진 환경을 탓하지 않고 변화를 올곧이 받아들이며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에 완전히 적응하는 것. 그것은 나무가 이 지구상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생명체가 될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p.137). “나무는 평화의 기술자다. 세상 그 무엇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고 존재 자체로 휴식이 되고 작은 평안을 가져다준다”(p.8).

 

이와 함께 어떤 일을 새롭게 시작한 초기에 겉으로 드러나는 성과가 별로 없어서 좌절할 때 ‘눈에 보이는 생장보다는 자기 안의 힘을 다지며 뿌리를 키우는 시기인 '유형기’를 보내는 때일 수 있다는 것도 삶의 새로운 시각을 열어 준다. 정호승 시인은 견딤이 쓰임을 결정한다고 했다. 사람이나 나무나 제대로 살아 내는 과정에는 오로지 버텨야 하는 순간이 있는 듯하다.

“인생에서 정말 좋은 일들은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값지고 귀한 것을 얻으려면 힘이 들어도 어떻게든 버티고 스스로를 응원하면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라.” 캄캄한 땅 속에서 뿌리의 힘을 다지며 인내의 시간을 보내는 친구에게, 또한 나에게도 종종 해주고 싶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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